오피니언

최진동 장군 친일 주장과 이해할 수 없는 보훈처 공훈심사 과정

관리자

2021.01.05

| 최운산 장군의 이중서훈 문제가 선결되어야



▲최진동 장군과 홍범도 장군이 레닌에게서 권총과 군복을 선물받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2019년 겨울부터 보훈처는 잘못 서훈된 독립유공자를 찾기 위한 전수조사를 실시했다.  일정 기간의 전체 독립운동가 명단과 그동안 친일 논란이 있었던 인물이 1차 재조사 대상이라고 했다.  그런데 거기에 최진동 장군이 포함되었다고 했다. 2019년 7월의 서울 신문의 최진동 장군 친일 의혹 보도 등 논란이 있어 재조사에 포함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올해  여름 국가보훈처 서훈심시위원회가 최진동장군의 서훈을 취소하기로 결정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한번도 보지 못한 전광석화 같은 추진이었다. 국가나 공적 기구에서 그런 결정이 내려지려면 절차상 그 과정 중에 해당 유족들한테  어떤 문제가 있는지,  그동안 어떤 사료가 추가로 확인되었는지 알려줘야 한다. 그리고 그에 대해 소명할 기회를 주고 답을 받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  그런데 그런 과정도 없이 보훈처 서훈심사위원회가 일방적으로 서훈 취소 결정을 내렸다는 것이다.


중국과 한국, 미국에 흩어져 살고 있는 후손들 중 누구도 연락을 받은 사람이 없었다. 몇 달 동안 여러 사료를 조사하고, 전문가 검토와 서훈심사위원회 자료 준비 등의 과정에서 후손들에게 단 한 번도 연락하지 않았고, 보훈처 관계자와 서훈심사위원회가 편향적인 서류를 준비하고 일방적으로 서훈 취소를 결정했다는 뜻이다.


이해할 수도 용인할 수도 없는 행정 행위였다. 그동안 보훈처에서 최진동 장군 친일 논란 문제를 진행하는 일련의 과정을 지켜보면서 누군가 이 일을 주도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구심이 강하게 들었다. 내부 서훈심사위원회 위원이 아니라면 끌고 갈 수 없는 일들이 연속으로 일어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작년 뜬금없었던 서울신문 기사 건도 이해할 수 없었지만, 올해 그 기사를 빌미로 전수조사에 명단을 올린 것은 더 황당했다. 보훈처 서훈심사위원회라는 공적 기구가 어떤 이유에선지 정해진 절차와 규정을 제대로 지키지 않고 졸속으로 진행하는 목격했기 때문이다. 누군가 내부에서 최진동 장군의 친일을 강하게 주장하면서 비상식적으로 밀어붙이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지난 몇 년의 과정을 다시 정리해본다.


북간도 신한촌 봉오동을 개척한 최진동, 최운산, 최치흥 3형제는 1912년부터 봉오동에 군사학교를 열어 독립군을 양성했고, 1915년 토성과 대형 막사를 건축하여 독립군기지를 완성했다. 이 형제들이 장기간에 걸친 준비하고 창설한 <대한군부도독부>와 <대한북로독군부>가 봉오동전투, 청산리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


그동안 봉오동전투에 대한 학계의 연구가 부진하여 연변 도태 최우삼의 아들 최진동 최운산 최치흥, 최명철 4형제의 업적이 잘 알려지지 않고 있었다. 2016년 최운산장군기념사업회가 창립되고, 당시 북간도의 정치사회적 배경을 밝히는 세미나 등을 개최하면서 최근에야 봉오동전투와 최진동, 최운산 장군 형제들의 업적이 조금씩 밝혀지고 있다.


봉오동전투에서 승리한 독립군 통합군단 대한북로독군부는 총사령관 최진동, 참모장 최운산, 참모 최치흥, 연대장 홍범도, 연대장 김좌진, 연대장 오하묵 등으로 조직되어 있었다. 1920년 12월 임시정부 군무부가 발표한 공식 문서에도 사령관 최진동, 연대장 홍범도로 기록되어 있다.


최운산장군기념사업회는 봉오동전투의 현장을 답사하여 봉오동전투의 현장이 지금까지 알려진 것보다 10km정도 산으로 들어간 곳에 있음을 밝혀내는 등 학술적 사료 발굴과 더불어 북간도 무장독립전쟁사를 구체화하는 일에 힘을 쏟고 있다.



▲ 1922년 모스크바 극동민족대회에 참석한 최우산 장군, 왼편에 여운형 선생이 함께 있다.



사료를 확인하던 2015년 최운산 장군의 8개의 異名(명길明吉, 문무文武, 만익萬益, 풍豊, 고려高麗, 빈斌, 복福) 중 하나인 최문무가 따로 서훈이 된 것을 발견하였다.


최문무는 후손의 신청 없이 2008년 보훈처 연구진이 독립운동 사료를 확인하여 애국장으로 서훈하였다.  보훈처가 자체 발굴한 독립유공자라니 반가운 마음에 최운산과 최문무가 동일인이라고 보훈처에 신고했다. 그런데 의외의 문제가 기다리고 있었다.


보훈처가 연변에서 가서 최문무의 후손을 찾았고, 2009년부터 그 후손이 유족연금을 지급 받으며 국내에 들어와 살고 있다는 것이다. 보훈처는 최문무와 최운산은 다른 인물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우리가 확인한 최문무는 최운산과 활동과 업적이 동일했다. 만주 무장독립운동을 전공한 역사학자들도 최문무와 최운산이 동일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앞으로 여러 가지 확인이 필요한 일이라 생각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최문무의 후손을 자처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게 되었다. 연변 출신의 독립군 후손 모임의 회원 중에 최문무의 후손이 있었다. 최문무의 외손자라고 했다. 친손자도 한국에 들어왔는데 외손자가 수급권자가 되어서 그와 친손자 사이에 불화가 심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2018년 가을 이런 상황을 인지한 ebs 다큐 제작진이 ‘가짜 독립유공자’를 주제로 다큐를 제작하면서 그와 인터뷰를 시도했다. 그는 최문무의 독립운동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 그리고 자신의 어머니가 최문무의 외동딸이라고 주장하는 등 거짓말을 했다.


제작진이 그의 거짓 답변을 지적하며 진실을 요구하자 잠시 쉬면서 보훈처 관계자와 통화한 뒤 취재를 거부하기 시작했다. 보훈처 담당자가 아무 말도 하지 말라고, 보훈처와 함께 대응하자고 했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은 보훈처와 역사학자 박 모 교수가 인정해준 사람이니 그들에게 가서 확인하라며 큰소리쳤다. 이해할 수 없는 행태로 자신이 가짜일 가능성을 스스로 확인해준 것이다. 


그 후 취재진이 보훈처에 취재를 요청해 2009년 연변에 가서 후손을 확인하는 작업을 수행한 보훈처 연변지역 담당자 안 모를 만나기 위해 보훈처를 방문했으나 그는 취재진에게 거칠게 대응하며 끝내 인터뷰에 응하지 않았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무장투쟁을 전공한 한 역사학자가 이 일에 개입되어 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었다. 


그런데, 연변에 가서 가짜일지도 모르는 사람을 최문무의 후손이라고 인정한 학자와 서울신문에 최진동 장군의 친일을 주장하며 제보한 보훈처 서훈심사위원이 동일인이었다. 그 사실을 알고 나니 그 역사학자로 인해 생겼던 몇몇 의문들이 한꺼번에 해소되었다.


지난 몇 년간 그가 보훈처 서훈심사위원으로 있으면서 최운산 장군의 부인 김성녀 여사와 동생 최치흥의 서훈 부결을 주도하고 있었는데 왜 그러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삼형제를 중심으로 온 집안이 함께 독립운동을 한 것이 역사적으로 다 밝혀져 있는데도, 김성녀 여사의 서훈이 옳다는 다른 역사학자들의 의견까지 무시하면서 서훈심사위원회에서 김성녀 여사의 서훈을 번번이 부결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친일로 알려진 많은 인사들에 대해 시민단체가 친일이라 고발해도, 후손들이 스스로 가짜임을 밝혀도, 친일로 결론이 나려면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래서 몇 년 간 별다른 진척이 없는 경우가 많다.  그동안 유명 예술가 등 사회적 논란이 있는 인물들의 친일에 대해서도 국가보후처는 거의 입장 표명을 하지 않고 있다.


그런데, 최진동 장군에 대해서는 왜 그렇게 급하게 결론을 내려고 노력하는지 뭔가 다른 이유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던 터다.


최운산 장군 이중 서훈 문제가 선결되어야


지난 몇 년 간 최운산 장군 후손들이 국가보훈처에 최운산과 최문무의  장군의 이중서훈 문제를 계속 제기하면서 오히려 그때부터 최진동 장군이 친일이라는 이야기가 다시 들려오기 시작했다.  


사실 지난 몇 년 간 박 교수가 역사학계에서 봉오동전투와 최운산 장군의 업적에 대해 “최운산이 군자금 좀 낸 것이 뭐 대단하냐며 폄훼한다는 이야기도 여러 번 듣고 있었다. 무장투쟁에서 군자금이 제일 중요한 것이 아닌가? 무장력을 가진 군대를 유지하려면 얼마나 많은 비용이 드는지 알고있는 만주 무장투쟁을 전공한 역사학자가 할 수 없는 언행이었다.


그동안 그가 왜 그런 주장을 하는지 의아했다.  그는 우리를 만날 때마다 자신은 봉오동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고 계속 강조했다. 무장투쟁을 전공한 학자가 북간도 무장독립전쟁의 시작인 봉오동전투를 모른다는 것이 이상했지만 그가 봉오동전투보다 청산리전투에 관심이 더 많아서 그러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가 왜 그렇게 최운산 장군을 무시하는 언행을 계속 하는지, 왜 최진동 장군이 친일이라는 소문을 주변의 역사학자들과 후배들에게 확산시키고 있는지 궁금했다.  왜 서울신문 기자에게 최진동 장군이 곧 친일로 결정난다고 확언하여 기사를 게재케 하고, 그 기사를 빌미로 재조사에 포함하는지...  지난 몇 년 간의 일련의 행동이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인지 정말 궁금했었다.  최진동 친일 논란과 최운산 최문무 이중 서훈 문제가 서로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을 그동안 인지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마 그는 최진동 장군이 친일로 결론이 나면 그의 동생인 최운산도 그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주장하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 최운산이라는 역사적 인물이 세상에 알려지고, 최문무가 최운산이라는 것이 알려지는 걸  피하고 싶었을 것이다.  


최문무의 가짜 후손으로 짐작되는 사람은 그동안 국내에 들어와 정착하고 10년 이상 유족연금을 수령했다. 만약 잘못된 일이었다면 실수였다고 덮고 지나갈 수 없는 사안이다. 당시 보훈처 담당자에게 책임을 물어야 겠지만 함께 검증 작업을 한 역사학자의 책임 소재도 거론될 것이다.  2009년 최문무의 후손을 찾는 과정에서 박 교수가 미처 제대로 확인하지 못한 부분이 있었는지는 지금 알 수가 없다.  


최진동 장군은 역사의 피해자다. 중국의 문화혁명기에 공산주의를 반대한 지주였다는 이유로 친일파로 몰렸고, 연변 역사학자들의 개인적인 욕심과 편파적 대응으로 친일파로 폄훼당한 불행한 독립운동가다. 


후처인 어린 부인이 낸 국방헌금 100원 등 다른 사람들에게는 사소한 에피소드에 불과했을 이야기가 연변 역사학자들의 개입으로 친일의 증거가 되었고, 몇 십 년 동안 정리되지 못한 채 남아 있다가 한국에서도 한 역사학자의 개인적인 욕심에 동원되는 불행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보훈처 서훈심사위원회가 친일의 근거로 내놓은 반민특위 자료, 동아일보 헌금 기사 등은 이미 논란을 거쳐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90년대에 판명된 것들이다. 추가된 자료 중 1926년 중국측에 잡혀 3년 간 투옥 당하고 나오면서 연길관청, 즉 중국 측에 제출한 자술서를 마치 일제영사관에 제출한 것으로 역사적 사실을 왜곡해 자료를 만들었다. 또한 당시 죽음을 앞둔 와병 중에 사망 몇 개월 전 선무활동을 했다는 정황상 거의 불가능한 주장과 친일신문인 만선일보에 최진동 장군 사후에 일제가 조의금을 보냈다는 기사를 친일의 근거라고 주장하고 있다. 


국가보훈처 서훈심사위원회는 최진동 장군을 친일이라는 결론 하에 그동안 제기됐던 자료들을 다 끌어 모아 비상식적인 몰아가기로 친일이라 판정했다. 최진동 장군은 당시 일제가 옆집에 3층 요정을 지어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면서 그를 회유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였던 인물이다. 만약 당시 최진동 장군이 친일이 사실이라면 그의 생전에 더 많은 내용이 만선일보에 실렸을 것이다. 겨우 사후에 조의금을 문제삼고 있다. 


그 과정을 다시 돌아보면  서훈심사위원 한 사람이 왜곡된 내용을 신문사에 제보해 사회적 논란을 만들고, 그 논란을 근거로 재조사에 포함시키고, 그 신문기사는 또 하나의 증거 자료로 축적되었다. 그리고 위원인 자신이 서훈심사위원회에 영향력을 발휘하여 서훈 취소 결정까지 유도해 냈다.


비록 지금 결정적 증거를 제시할 수 없지만 국가보훈처 서훈심사위원회라는 공적 장치가 한 특정 학자의 편견과 주장에 좌우되고 있음을 목도하면서 역설적으로 그것이 가장 큰 증거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버릴 수 없다.


이러한 논란의 가장 큰 배경은 서훈심사위원회 구조와 편향된 운영 방식에 있음을, 독립운동사를 전공한 한 역사학자 장기간 서훈심사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자신의 뜻을 관철할 수 있는 심사절차와 과정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보훈처 서훈심사위원회 위원 구성과 운영에 대해서는 그동안 역사계 주변에서 불공정함을 오랫동안 지적하고 있다. 


최진동 장군 친일 논란은 앞으로 후손들의 소명과 학자들의 논의를 거쳐 제대로 정리될 것이다. 최운산과 최문무의 이중 서훈 문제도 다시 구체적으로 확인되어야 한다.


보훈처 공훈심사위원회는 공정한 심사를 진행하고 있는지, 서훈심사위원회 위원들은 충분한 연구를 바탕으로 공정한 심사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는 사람들인지, 이제 챙기고 살펴보아야 할 때다.




최성주 객원편집위원  immacoleta@naver.com




출처 : 한겨레온 (http://www.hanion.co.kr/news/articleView.html?idxno=12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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